내가 볼때 여성과 남성은 권력분배에 있어서 대립될 이유가 전혀없다. 여성은 여성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 아니고 남성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여성,남성은 그냥 젠더구분이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이상하게도 이 두 젠더의 구분이 상이한 권력분배를 보여준다. 이 말은 즉 그저 젠더구분이 아니라 한쪽이 자신의 젠더에 관한 이익을 공고히하여 차별이 생겼다는 말이다. 남성의 권력은 정치, 문화, 경제의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주도권을 가지게되었다. 여성은 남성에게 출산을 하는 사람으로, 성적욕망의 대상으로, 그래서 물건, 재산으로 여겨지며 지금도 우리 생각 저변에는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이 깔려있다. 육아휴직을 하지 않고 남편에게 아이를 맡긴 여자직원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이상한 소리를 많이 듣는다. 국회의원이나 대법원 판사의 성비가 남성이 많은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여성이 더 많은 것은 당연하지 않다. 여성이 더 많은 것을 이상현상으로 여기고, 성비가 맞지 않는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미 표준에 가까운게 남성이라는 사실 자체에서부터 남성의 권력이 우위에 있다. 여러 곳에서 물이 새는 집의 구멍을 매우듯이 이런 부분들을 하나 하나 고쳐나가다보면 새로운 사회가 되는 걸까? 여성전용주차장, 여성전용 귀가 서비스 등 사회자체가 여성에게 불안정하여 불평등 상태를 지탱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불평등이 완전히 해소된 사회를 만든다면 그건 어떤사회일까? 출산이 여성으로서의 조건이 아니라 온전한 선택으로 인식되면서 국가가 원하는 인구증대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새로운 사회에서 인간은 지금과 같은 부모와 가족의 개념이 있을까? 만일 개인의 바람을 관철하여 국가존폐위기까지 가게된다면 국가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가 뚝딱하고 생겨날까? 이 모든 변화를 감당하는게 나을까 지금처럼 사는게 나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냥 지금처럼 살고싶어할 것이다. 태어날때부터 내가 사는 세상이 '너는 누군가의 아래에 종속된다'고 말하는 것을 개인이 거부하는 것은 존중되어야한다. 권력이 존재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러운 흐름대로 살아야한다고 플라톤 국가의 트라시마코스와 이 시대의 많은 젊은 꼰대들이 말한다. 몇 천년이 흘렀는데도 같은 소리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다. 하지만 그 사이 인간은 정말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만약 권력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노예제도와 민주주의 사이의 변화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인가? 이 변화는 그냥 무시하고 세상은 어쨌든 소수 권력이 장악한 세상이라고 말할 것인가? '온전한 평등은 가능한가?'를 질문한 시점에서 이미 내가 죽기전에 가능한가?는 중요치 않다. 나는 가능한지 불가능할지 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사는 시대에 이루기힘든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뾰족한 돌이 가장 평평한 면으로 누워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평등한 사회를 위한 노력은 그 돌을 뾰족한 면으로 세워놓는 일만큼이나 힘들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결핍으로 보고 채워나가려고 한다는 것또한 인간의 습성이 아닐까 싶다. 어찌보면 이 질문은 너무도 당연한 질문이지 않았나싶다. 인간사회는 많은 이들이 꿈꾸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되어있다. 한번 상상된 이상은 돌이킬수도 포기시킬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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