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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Cultura27

중세 좋아하는 사람 <키아라> 꼭 보세요 강추! ! ! ! 16일 이탈리아 영화제 개막 영화로 를 보러 갔다. 1211년, 키아라는 있는 집안의 딸이다. 키아라는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가난하게 살고싶어했다. 그래서 키아라는 뜻을 함께하는 친구와 도망친다. 그렇게 성녀 키아라는 속세를 버린다. 그녀는 가난의 삶을 선택한다. 클라라는 가난하게 살고 싶었다. 가난한 자들과 함께 신도의 삶을 살고싶었다. 이런 그녀의 바람은 치기어린 도덕주의자의 오만이 아니라 그저 그녀라서 가질 수 있는 형태의 순수한 바람이었다. 숲과 바람을 따라 뜻이 맞는 사람들과 버려진 성에 들어가 가난과 함께 사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는 1240년 아시시의 클레어 성녀의 삶을 각색한 스토리이다. 중세시대 러버로서 이 영화는 진짜 진또배기다. 음식, 옷, 가구, 중세 이탈리아어 말투.. .. 2023. 2. 19.
탈춤극으로 보는 박형규 목사님의 삶 아빠가 운동권시절 탈춤을 췄다. 요즘 아빠가 60대에 접어들면서 은퇴를 시작했고, 다시 춤바람이 났다. 삼삼오오 그때 같이 췄던 춤패랑 모이더니 어느날 공연하나 보지 않겠냐고 했다. 탈춤공연! 좋다고 보겠다고했다. 내용은 박형규 목사님의 일대기라고. 박형규 목사님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 당시 교회 안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시고 지금도 그렇지만 종북, 국가내란죄로 잡혀가기도하고 자신이 목사로 지내던 교회마저 뺏기신 분이다. 그렇게 무려 6년을 자신의 교회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거리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수요집회가 생각났다). 어릴때는 그냥 아저씨들 이야기 같았는데 노동자의 신분으로 이 이야기를 보다보니 마음이 참 아팠다. 공연을 보고 난 기분이 참으로 오묘했다. 탈춤의 춤가락에서 굵직하고 엄중하면서 친숙한 몸.. 2023. 2. 11.
선넘는 중세시대 라자냐 우리가 생각하는 라자냐다. 맛을 상상하기만해도 눈이 감기는 치즈와 라구소스의 환상적인 라자냐... 그렇다면 3~4세기 시대 이탈리아에서 먹던 라자냐는 뭐였을까? 그 시대 사람들이 '나 라자냐 먹었어' 라고 한다면 이걸 먹은거다. ...? 중세시대 사람들은 분명 배가 고팠을 것이다. 라자냐는 파스타면의 한 종류이다. 물과 밀가루를 섞어서 반죽을 한 뒤, 얇게 펴면 라자냐 면이다. 이렇게 쉬우니 이탈리아에서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이미 이렇게 해 먹었다. 그러니 라자냐의 얇고 넓은 면 자체는 새로울게 없지만 확실히 요리법은 중세만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지금의 관점에서도) 근데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 지금은 모든 요리법이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새롭게 알게된 사실은 중세시대에는 고기를 못먹는 날이 따로 .. 2022. 8. 4.
토마토는 잊어라! 찐 중세 이탈리아 요리는 어땠을까? 토마토도 없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토마토 파스타, 라자냐같은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까마득한 옛날. 심지어 감자도 없었다. 대체 중세 이탈리아, 프랑스는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원제 : A Tavola nel Medioevo) 조선시대 국밥 레시피를 배울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조선시대 사람이 먹던 국밥을 나도 맛 볼 수 있다니.. 그 맛이 궁금해진다! 내 위장 뿐 아니라 뇌까지 그 포만감이 올라올 것 같다! 중세 이탈리아요리는 조선시대보다 훨씬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요리는 서기 3,400년대에 완성된다. (아마 그 이후로도 쭉 향유되었을 것이다.) 서기 600~1000년 사이에는 중세요리가 아닌 다른 요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우리가 아는 요리에 가까워진다. 뭔가 내가 생각했던 중세.. 2022. 8. 3.
[루쉰 읽기] 쿵이지孔乙己.. 우리가 세상을 등지는 과정 우리가 세상을 등지는 과정은 천천히 세상이 우리를 등지는 과정과 함께 일어난다. 그 두개가 사실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고군분투하며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어도 아무리 속이 좋고 생각이 없어도 삶에 있어 고군분투하는 일면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에나 세상에 갈리는게 힘겨워 그만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죽지 못해 산다고한다. 삶의 끝, 죽음 직전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 하루하루를 이끌어나가는 삶은 슬프지도 비참하지도 않게되어버린다. 쿵이지는 어디로 가버린걸까? 정말 죽은걸까? 애초에 루쉰의 쿵이지는 살아있었던 적이 있었나? 붓과 벼룩마저 팔았을때도 쿵이지의 어딘가 한쪽이 본인도 모르게 죽고있지 않았을까?.. 2020. 5. 4.
[루쉰 읽기] 광인일기, 뒤틀린 도덕의 역사 그냥 독서 기록이라 할지라도 순서를 갖춰서.. 1. 내용을 되새기며.. 2. 내 생각, 느낀점 1. 내용을 되새기며.. 루쉰은 그를 광인이라 했다. 미친사람, 그는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맞닥뜨리게된다. 바로 형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것.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모두 한 패라는 것. 심지어 아이들마저도 부모의 식인(吃人) 배운다. 광인은 “마지막에 아이들을 구해야할텐데..” 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는 이 충격적인 현실을 설명해줄 무언가를 찾아 역사책을 읽기시작한다.. 그가 찾은 것은 '식인'의 역사. 마을 사람들만 미쳐서 '식인'을 해온 것이 아니라 본래 인간이 ‘식인’이란 것을 몇 천년동안 자행해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가 이런 피해망상에 쌓여 미친소리를 하는 와중에 던진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한 .. 2020.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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